['원격의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⑤ 의료계와 시민단체 반대로 의료법 개정 요원

박응식 기자 승인 2020.03.09 14:43 | 최종 수정 2020.03.20 15:03 의견 0
 

[디지털머니=박응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한시적 원격의료를 시행하면서 이를 계기로 본질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원격의료는 지난 20여년간 찬반여론이 충돌해온 '뜨거운 감자'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지난 2010년 이후 수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상임위 문턱을 넘지못하고 폐기됐다. 

디지털머니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해묵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원격의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편집자 주] 

국내 원격의료가 시범사업에 그치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거센 반발 탓이다. 의료계가 반대하다 보니 의료법이 개정되지 못하고 결국 시범 사업만 반복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오진과 잘못된 치료를 조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진하고 촉진하는 등의 대면 진료를 통해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병을 발견할 수 있는데, 원격 진료가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원격진료를 허용할 만큼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이 취약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의 경우에도 읍면동 단위까지 1차 의료기관이 확대되고 있고 교통도 발전한 상황에서 인프라를 극복하고자 아직 불완전한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자들이 1차 병원 대신 대형병원의 원격 진료를 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공중보건의사들조차 원격 의료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대면진료에 비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원격진료를 하는 데 있어 발생한 분쟁에 관한 책임에 대해 사전조율이나 협의 없이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단체, "원격의료는 대기업 배 불리는 특혜" 비판

원격의료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로 의료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반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검증 안 된 원격의료를 기업 이윤추구를 위해 추진한다고 비판한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원격의료는 환자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바 없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의료의 기본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마주해 묻는 것, 청진과 촉진, 시진 등이 기본"이라며 "원격진료는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낮출뿐더러 의료사고 위험을 높이는데 정부가 이를 산업정책으로 밀어붙인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강원 등 격오지는 원격의료보다 공공 응급의료체계가 시급하다고 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벽지 만성질환자들의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공공기관과 방문진료를 늘려야 한다. 응급의료체계도 절실하다"며 "특히 만성질환의 핵심인 합병증 관리의 경우, 원격의료와 같이 불안한 기술로는 보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원격의료가 대형병원과 대기업, 통신기업만 배 불리는 '특혜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원격의료가 확산하면 원격진단시스템과 게이트웨이, 혈압·혈당측정기 등을 들여야 하고, 국민의 의료비가 고스란히 삼성SDS·메드트로닉·로슈 같은 국내외 대기업과 통신기업의 돈벌이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4년 원격의료를 만성질환자 585명에 도입하면 이에 필요한 장비에만 20조원 지출을 예상했다. 원격의료가 확산하면 동네의원보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린다는 우려도 있다.

법 개정 필수지만 10년째 시도만

이런 의료계의 반대에 의료법 개정도 매번 계류되거나 폐기되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도 원격의료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법이 허용하는 원격의료는 의사와 의사 간에만 가능하다.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 건 벌써 10년 전이다. 2010년 18대 국회에서 ‘의사-환자 간’에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등이 원격진료의 정확성과 안전성, 미흡과 책임소재 모호, 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이유로 반대한데다 여야 간 입장 차이로 논란만 낳고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실제 2006년 이후 매년 복지부 업무계획에 '원격진료'는 단골 이슈였지만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실패했다. 복지부는 2013년 10월 의료기관 접근성을 높이고 국민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를 추진했다. 원격진료가 가능한 환자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애인 △도서·벽지 거주자 등으로 제한했다.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은 동네 의원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국회 상정조차 못하고 표류했다.

19대 국회에서는 복지부와 의사협회가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해 원격의료를 입법화하기로 합의했으나 원격의료 확대 시 의료영리화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번에는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16년에 또다시 다시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싶어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의사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지자체 한 관계자는 “주민 반응이 좋아 시범 사업을 확대하면 좋겠지만 가급적이면 의사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며 “시골에서 의사는 대부분 공중보건의들인데, 이들이 떠안고 있는 업무가 이미 많은데 원격진료라는 추가 부담까지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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