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헬스케어] ② '원격의료 찬반 논쟁'에 가로막힌 'ICT 융합 메디컬'

김정태 기자 승인 2020.09.30 01:30 의견 0
(자료=무역협회)

[디지털머니=김정태 기자] 우리나라는 현재 의사-환자 간 진료 및 처방, 의약품의 비대면 판매 및 배송 등이 불법이다. 그나마 일부 허용된 부문이나 품목조차 의료 관련 산업이 발전할 여지를 막는데만 급급해 보일 정도다.  

이런 가운데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비대면 진료체계’ 구축을 공식화하면서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재개됐다. 수년 전부터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를 어떻게 설득할 지 지켜 볼 수 밖에 없다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 디지털 헬스케어 세계 150대 스타트업 중 국내 기업은 단 한 곳

30일 무역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1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중 국내 원격의료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은 파악된 현황조차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우리나라 디지털 의료 시장은 'IT 강국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원격 의료행위 제한, DTC(Direct-To-Consumer,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 항목 제한, 데이터 통합 활용 제한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신기술, 투자유치 측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탓이다.

이를 증명하듯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세계 상위 150대 스타트업 중 우리 기업은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영상 판독기업인 ‘루닛(Lunit)’ 한 곳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116개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며 중국(7개), 이스라엘(4개)에게도 밀린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신기술 특허 출원 경쟁력은 미국의 7% 수준이다. 주요국가 맞춤형 헬스케어 특허출원건수 비교에서도 최근 10년간 미국 2만2741건, 유럽 6949건, 중국 4346건, 일본 3741건, 한국 1588건으로 집계된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의료 인프라 및 데이터 축적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데이터의 디지털화 수준을 나타내는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은 92%에 달한다. 이는 유럽 84%, 미국 60%에 비해 상당한 격차를 나타낸다. 

특히 학습 데이터 확보가 비교적 용이한 영상 진단 분야에서 국내 AI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AI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잠재력은 높게 평가받는 근거다.

무협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원격 의료기기와 민간 건강보험의 결합상품에 기반한 원격 만성질환 모니터링 서비스가 활발하게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원격 의료기기의 활용이 제한적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의료기기가 아닌 앱 기반의 건강관리 서비스가 성장중이라고 이 관계자는 아쉬워했다.

심각한 문제는 더 있다. 세계 100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63개(누적투자액 기준 75%)가 국내시장 진입 시 관련 법에 저촉된다는 조사가 올해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이들 63개 기업 중 원격의료 관련 규제로 시장 진입이 어려운 기업이 4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산업 자체가 아예 막혀 있다는 조사 결과인 셈이다.

(자료=무역협회)

■ '원격의료 허용' 찬반 논의 수년간 지지부진, 디지털화 '걸림돌' 

국내에서 허용된 원격의료 행위도 관련 인프라와 구체적 가이드라인의 미비, 의료계 일각의 거부감 등으로 그간 활성화되지 못했다. 합법 사항인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인프라, 수가체계 등의 미비와 제도 활용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 저조로 활용도는 낮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중 원격 모니터링은 유권해석 상 일부 허용되고 있으나 수가체계 미비, 위법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원격의료에 활용될 소지가 있는 웨어러블 기기는 의료기기 허가가 지체되거나 허가 이후에도 제한된 방식으로 활용되는 정도다. 업계는 그마저도 실효성이 없다고 호소한다. 원격의료에 활용될 가능성만 있어도 그 기능을 차단한 채 출시할 수밖에 없어 제품 경쟁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가 받은 의료기기 역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금지' 조항 때문에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제한된 방식으로 적용될 뿐이다.

DTC 유전자 검사도 마찬가지다. 개인 특성, 건강 관련 항목에 대한 원격 유전자 검사를 허용 중이나 진단·치료 관련 항목은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검사 허용 항목은 점차 확대되고 추세다. 하지만 질병, 보인자, 약물 민감도 등의 항목에 대한 검사는 여전히 불허 사항이다. 정부 관계자는 "검사 허용 항목이 56개에서 70개로 확대될 예정"이라면서도 "웰니스 검사항목에 국한된다"고 여전히 조건을 달았다. 실제로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승인을 받은 검사 항목조차 보건복지부 공용기관생명윤리 위원회(IRB)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시범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못하다.

게다가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찬반 논의는 의료 접근성, 의료 품질 및 안전성, 비용 효율성, 책임소재 등의 쟁점을 중심으로 수년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과거에 여러 차례의 입법 시도가 의사들 반대로 무산됐다"면서 "정부가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의료산업의 디지털화는 마냥 늦춰질 것"이라고 전했다.

원격의료 허용을 둘러싼 논의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 무협은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객관적 입증 사례가 해외에 일부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 대입할 수 없다는 논리에 거부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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